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철학책을 읽으며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고민해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철학, 그리고 종교적 가르침들은 저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을 향하고 있었다.
인간은 왜 그렇게 살아가는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하면 그 사람 전체를 부정했고, 한 번의 실수를 본 사람에게는 쉽게 낙인을 찍었다. 학벌과 경력, 직급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나 역시 그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직은 공정함을 이야기하지만 편견 위에서 움직이고, 리더는 사람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쉽게 통제하려 한다. 구성원은 주인의식을 강조하면서도 책임을 두려워하고, 모두가 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익숙한 방식에 머무르기를 바란다.
오랜 시간 사람과 조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문득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
심리학은 인간이 수많은 인지적 편향 속에서 판단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타인의 행동은 성격 때문이라 단정하고, 자신의 행동은 상황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철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플라톤은 인간이 그림자를 실체로 착각한다고 했고,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말했다. 불교에서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인간의 본성이라 이야기하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무상(無常)을 설파했다.
생각해 보면 조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도 결국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신주의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은 두려움에서 시작되고, 학벌과 인맥을 중시하는 문화는 익숙한 것을 신뢰하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특정 직업과 기업을 향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람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가진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은 이 오래된 관성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과거에는 소속과 학벌, 정보의 독점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사람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연결하며,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AI는 지식을 빠르게 전달하지만,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관계를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조직은 더 많은 기술자가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좋은 조직은 편견이 없는 조직이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조직은 인간이 편견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여러 사람이 함께 판단하며,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사람을 완벽하게 믿어서가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리더도 마찬가지다.
실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는 사람, 자신의 생각이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수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시간이 흐르며 나 또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원망과 시기, 질투와 복수심이 마음속을 오래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실패와 후회를 반복하며 살아오다 보니 그 감정들조차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무상이라는 것은 세상이 변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품고 있는 감정 또한 결국은 지나간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직장도, 직함도, 학위도, 사회적 명성도 모두 내려놓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는지보다 얼마나 깊이 사람을 이해하려 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보다 얼마나 자신의 편견을 내려놓으려 노력했는지가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정답을 말하려는 책이 아니다.
사람과 조직을 오래 관찰하며, 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인간다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남긴 기록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를 만들고, 원칙을 세우며, 서로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 제도와 원칙 또한 완전할 수는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일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인간다운 조직과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들에 대한 긴 사색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