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왔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 종교적 사유, 심리학의 여러 흐름은 서로 다른 언어와 방식으로 설명되어 왔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었다.
인간은 왜 흔들리는가.
무엇에 반응하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가.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개념들 역시 이러한 질문들 위에서 만들어졌다. 철학은 존재를 묻고, 종교는 삶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심리학은 그것을 관찰 가능한 언어로 해석하려 했다.
어쩌면 오늘날 기술의 발전 또한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AI가 빠르게 진화하는 이유 역시 결국 인간을 더욱 정교하게 이해하고자 했던 오랜 탐구의 결과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와 감정, 선택과 망설임, 판단의 패턴을 이해하려 했던 선배들의 축적된 노력들이 이제는 기술이라는 형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변증법적 행동치료의 뿌리로 알려진 선불교적 사유에서도 인간은 세상 속에 내재된 일정한 질서와 흐름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설명된다. 변증법적 이상론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일관된 패턴을 감지하고 경험하는 존재다(Linehan & Schmidt, 1995).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습관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신념이라 부르며, 또 누군가는 삶의 원칙이라 말한다.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그것들은 모두 하나를 향한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자기만의 해석 체계.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기술보다 앞설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인지도 모른다.
기술은 패턴을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패턴을 삶의 방향으로 선택할 것인지는 결국 인간만이 결정할 수 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중심축, 그것이 바로 자신만의 기준이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끝내 방향을 잃지 않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좌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