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재미난 상상을 해본다.
최근 일리아스를 읽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책 속에는 제우스, 아킬레우스, 헥토르, 트로이아인과 같은 이름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신들의 개입과 인간의 욕망, 전쟁과 영웅의 죽음이 뒤섞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흐려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로 있었던 전쟁과 상상 속 신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동양에는 삼국지가 있고, 서양에는 일리아스가 있다.
역사적 사실만을 기록했다면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인간의 욕망과 갈등, 선택과 비극, 영웅과 배신의 이야기가 담기면서 단순한 기록은 서사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실보다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한다.
문득 기업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기업을 숫자로 평가한다.
매출, 영업이익, 시가총액, 시장점유율과 같은 지표들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창업자가 어떤 생각으로 회사를 만들었는지, 어떤 위기를 넘겼는지, 어떤 가치를 지키려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기업 문화 역시 결국은 이런 이야기들의 축적이다.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성공과 실패를 기억하고, 그것을 후배들에게 전하며, 그렇게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창업을 한다는 것 역시 단순히 회사를 세우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하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오래 기억되는 리더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단순히 성과를 남긴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장면을 만든 사람들이다.
위기의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이끌었는지와 같은 기억들 말이다.
결국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서사다.
그리고 길이 남는 리더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다시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