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의 제목 하나가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짧고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오래 입안에 맴돌았다. 왜 이 말이 이렇게 오래 남는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단어에 닿게 되었다. 인정.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욕망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아주 본능적인 바람에 가깝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고, 친구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회로부터 자신의 존재가 쓸모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일어설 힘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인정이 기쁨과 성취를 넘어, 존재의 가치 자체를 증명하는 도구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성과가 있어야 인정받고, 능력이 있어야 주목받고, 보여줄 것이 있어야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시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면 마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 어쩌면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의 상당 부분은 여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인정받지 못함이 곧 무능함으로 해석되고, 침묵은 곧 뒤처짐으로 받아들여지며, 비교 속에서 평범함마저 부족함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는 모두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과 경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부족함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잘하든 못하든, 빠르든 느리든, 존재 그 자체로 웃고 뛰어다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만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갈수록 우리는 하나둘씩 자신을 설명할 언어들을 붙이기 시작한다. 직업, 연봉, 직책, 학력, 경력, 관계, 성과.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들이 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대신 판단하는 기준처럼 자리 잡기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성취가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내면의 안정감인지도 모른다.
존재는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평가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로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타인의 인정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시대.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박수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조용한 확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