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들이 있다. 업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사람들의 눈치와 분위기가 묘하게 움직이는 순간들 말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조사다.
누군가의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 같은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겉으로는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가야 할까.
가지 않으면 어떻게 보일까.
마음은 내키지 않는데 분위기상 참석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들은 생각보다 흔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사람들은 단순히 참석 여부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자신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까지 함께 의식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인간관계의 기본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사회생활의 일부라 말하며, 또 누군가는 굳이 사적인 영역까지 조직과 연결하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모습을 두고 흔히 세대의 특성으로 분류하려 한다는 점이다.
“MZ세대는 개인주의적이다.”
“요즘 사람들은 정이 없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세대만의 문제일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누군가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얻고, 누군가는 관계 속에서 쉽게 피로를 느낀다. 누군가는 경조사를 챙기는 것을 인간적인 도리로 여기고, 누군가는 형식적인 관계 유지에 가까운 행동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사람마다 관계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개인의 삶과 감정이 중요해진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관계를 반복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마음은 없는데 보여주기 위해 움직이는 행동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그것조차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예의와 정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관계는 원래 정답이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방식을 인정할 수 있는가에 있다.
누군가는 조용히 마음만 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직접 찾아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다.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그 안의 진심까지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성숙한 조직과 사회라는 것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계의 결을 존중할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진심은 강요될 때 오히려 가장 쉽게 사라진다.
그리고 관계는 의무가 되는 순간, 점점 피로로 변해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