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의 기록

오만함이 깎여 만들어지는 것

2026. 05. 24.· 성장
#성장#자기이해#변화#실패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것만 같던 시절이 있었다.

MBA를 마치고 바라던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나는 꽤 많은 것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름, 앞으로 펼쳐질 안정적인 미래, 그리고 노력하면 원하는 자리까지 오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확신까지.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꽤 대단한 사람이라 여겼다.

탄탄대로라는 착각은 사람을 쉽게 오만하게 만든다. 아직 무너지지 않았기에 자신의 단단함을 실력이라 믿고, 우연히 주어진 환경조차 자신의 능력이라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을 낮은 곳으로 데려간다.

회사가 흔들리고, 당연할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이름이 결코 개인의 안전을 영원히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마지막까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얼마 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한 배우가 신인 감독을 무시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오래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나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스스로 가진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아직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함부로 낮게 바라보던 시절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종종 자신을 드러내는 태도를 두고 쉽게 개인주의적이라거나 이기적이라 판단한다. 그러나 정말 문제인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타인을 지우는 방식으로 나타날 때다.

반대로 자신을 지나치게 감추며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것 역시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너무 오래 스스로를 뒤로 물린 채 살아왔다. 괜히 튀어 보일까 염려했고, 드러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으며, 조용히 제 역할만 하는 것이 성숙함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한다.

조금 더 앞에 섰더라면 어땠을까.

조금 더 나를 믿고 내 목소리를 냈더라면, 오히려 더 빨리 단단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자존감이란 스스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직 안에서, 관계 속에서, 수많은 충돌과 실패를 지나며 다듬어진다. 지나친 자신감은 현실에 의해 깎이고, 부족한 확신은 경험에 의해 채워진다.

그렇게 사람은 조금씩 자기 크기를 알아간다.

어쩌면 진정한 리더십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겸손한 사람보다, 한때의 오만함이 현실에 의해 다듬어진 사람이 더 깊은 리더가 되기도 한다.

인생이 우리를 낮추는 이유는 꺾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만의 길을 걷는 데 지나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이 타인을 짓밟는 오만이 아니라, 현실의 검증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담대한 확신이어야 한다.

진짜 단단한 사람은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존재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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