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물건에 부여하는 의미는 생각보다 다르다.
회사에서 경영기획 업무를 하던 중 이런 일이 있었다.
퇴근 후 에어컨에서 물이 새어 한 구성원의 책상 위로 떨어졌고, 그로 인해 개인 키보드가 고장 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보상 문제라 생각했다.
합리적인 선에서 대화를 나누면 쉽게 해결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당사자는 그 키보드가 친구에게 선물 받은 물건이기에 동일한 제품으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그것이 회사에서 지급한 장비가 아니라 개인이 가져온 물품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사용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감가상각의 개념이나 일반적인 사고 보상 사례를 설명하며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대표이사와 사업본부장까지 함께 논의하게 되었고, 이번만 예외적으로 처리하되 앞으로는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회사의 원칙을 명확히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키보드가 아니었다.
사람마다 물건에 부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조직 안에 모두가 참고할 만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기준이 없으면 모든 판단은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실무자는 눈치를 보게 되고, 중간관리자는 책임을 피하고 싶어 하며, 본부장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결국 최고 의사결정권자까지 사소한 일에 시간을 쓰게 된다.
원칙이 있어야 할 자리를 감정이 대신하고, 제도가 있어야 할 자리를 관계가 대신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많은 조직의 갈등은 거대한 전략 실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작은 경계들에서 시작된다.
어디까지가 회사의 책임인지.
어디까지가 개인의 선택인지.
무엇을 보호해야 하고 무엇은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지.
그 선이 분명하지 않을 때 조직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좋은 조직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 아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원칙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조직이다.
결국 회사의 기준이 없다는 것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에게 불필요한 피로와 갈등을 전파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작은 사건 하나가 가르쳐 준 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조직은 사람의 선의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